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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혜민스님 이야기
이름: 김달국


등록일: 2020-11-26 07:41
조회수: 270 / 추천수: 33


가을사진1.jpg (163.5 KB)

벌써 11월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마당의 나뭇가지는 앙상하고 낙엽은 쌓여 있습니다.
백일홍은 이름 그대로 꽃이 오래 가고,
서리 속에서도 노란 장미 두 송이가 아직도 예쁘게 피어있습니다.

며칠 동안 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혜민스님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잘 나갔고
대중들에게 많은 위안을 준 스님이었는데 한 순간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언론에서도 일제히 그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의 행동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를 부를 때 혜민스님이라고 하지 않고 혜민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스님의 신분으로 무소유를 설파하면서도
자신은 풀(full)소유의 삶을 살고,
남산이 보이는 집에서 고가의 전자기기를 보유하고,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3백만부나 팔린 그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는
밀리언셀러에서 형편없는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강의는 내용도 없으면서 돈만 비싸고,
그는 말로는 무소유를 말하며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강의 중에 시계를 쳐다본다며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말은 스님이 강의보다는 시간만 때우고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말에 동조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스님이 불제자의 신분으로 처신을 잘못 한 것은 인정합니다.
특히 집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 잘못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면만 보고 집단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절이나 암자에서 살면 돈이 필요 없겠지만
서울에 살면서 마음치유학교를 운영하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스님의 집이 남산이 보이는 동네에 있지만
골목길을 한참 지나서 있고 30평 남짓한 대지에 건평 40평 남짓한
규모로 8~9억 정도라면 그리 좋은 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혼자 사는 스님이 살기에는 호사스럽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스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연 수입도 많으니
그 정도는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이라고 해서 모두 암자에서 살면서 면벽수행을 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입니다.
위로는 진리를 깨치고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되려고 정진하는 동시에
아래로는 苦海에서 헤매는 일체중생을 교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고승이라고 해도 깊은 산중에서 자신만 해탈하고
열반의 세계에 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스님의 불심이 얼마나 깊은지는 모릅니다.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었지만 그 내용이 깊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책이 그만큼 팔린 것은 그의 인지도 때문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그는 몇 권의 책을 더 썼지만 저는 더 이상 그의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처신이 잘못 되었을 때 비난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 면만 보지 말고 다른 측면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의 중에 시계를 보는 것이 눈에 거슬릴 수는 있겠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강의를 마치기 위해서는 시간 관리도 필요하고
그러려면 시계도 봐야 하지 않나요?
강사료는 시장원리에서 정해지는 것이지 그의 강의료를 위해
정권이 압력을 행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도지죄 (餘桃之罪)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잘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란 뜻으로,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을 비유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전국시대 위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란 왕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당시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
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고 용서했습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먹을 것도 잊고 과인에게 바치다니…….”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미자하의 자태는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이처럼 한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도
오히려 화가 되어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4년 전에 부산 mbc 강당에서 혜민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이라고 해서 강연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방식이었습니다.
관객들이 같이 참여하여 스스로 느끼게 하는 참신한 시도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습니다.
강연에서 스님은 자신이 마음치유학교를 운영하면서 느낀 보람과
힘든 것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마음치유학교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직전에 몰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 두 번의 치유가 아닌 장기적인 치유가 필요합니다.
스님은 그곳에서 사람들이 치유를 받아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 때 보람을 느꼈고,
정부의 도움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이 그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최고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국가에서도 하지 못하는 것을
개인이 自備로 힘들게 마음치유학교를 운영하여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에 대해서 한 마디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저는 가지고 간 스님의 책에 싸인을 받으려고 하였지만
스님과 포옹하기 위해 선 줄이 100미터가 넘어 포기하였습니다.
스님은 줄을 선 사람들과 일일이 포옹을 하며 진심으로 대하였습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고 평가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언제 자신도 모르게 <여도지죄>를 지을지도 모릅니다.
花無十日紅이요 權不十年이란 말처럼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됩니다.
뜨는 것도 한 순간이요, 추락하는 것도 한 순간입니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법이니
자신의 자리와 본분을 잊어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회하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더욱 수행하겠다’며 떠난
스님의 용맹정진을 응원합니다.
훗날 더 깊어진 모습으로 오늘의 일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올 한해를 잘 마무리 하시고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소원해지는 관계 속에서도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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