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책이 많은 것을 뿌듯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서재에 있는 책들은 장식용이 아니다.
대부분 밑줄을 쳐가면서 읽은 책이고 앞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읽은 책을 계속 보관할 수는 없다.
공간의 제약도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을 때보다 다른 곳에 있을 때
책이 더 빛난다고 생각할 때는 더 이상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책을 좋아할 만한 사람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책과 상대에 대한 예의며,
내가 더 새로운 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책을 솎아낼 때 끝까지 남는 책은 어떤 책일까?
고전? 베스트셀러? 명작?
아니다.
바로 저자의 친필 싸인을 받은 책이다.
아는 저자로부터 받을 때도 있지만
강연회 같은 곳에서 강연이 끝난 뒤 개인적으로 받는다.
저자 앞에서 책 앞장을 펼쳐 요청하면 저자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어떤 저자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싸인을 받은 책은 나와 저자를 연결해주는 가교와 같다.
그 책은 어떤 경우에도 퇴출명단에서 빠지게 된다.
그렇게 저자와 하나가 된 책이 50권이 넘는다.
싸인은 단순한 서명을 넘어 저자와 독자 간의 교감을 의미한다.
싸인을 받는 순간은 저자에게는 기쁨이고 독자에게는 축복이 되어
그 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책이 된다.
싸인을 받는 행위는 저자에 대한 존경과 책에 대한 사랑의 표시다.
싸인 받은 책에는 저자의 향기가 묻어 있다.
내일(3.27) 포항도서관에서 <뉴럴 링크>의 저자 임창환 교수의 강연이 있다.
‘뇌와 컴퓨터의 인터페이스’에 관한 딱딱한 책이지만
저자를 만난다는 기쁨으로 꼼꼼히 읽고 있다.
물론 싸인을 받아야 하고 질문기회가 있으면
어떤 질문을 할까 생각하며 읽는다.
AI만 해도 복잡한 세상인데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연결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
어차피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의 모습이라면 그 분야 최고 전문가인 저자와
미래를 위한 대화를 하고 싶다. 싸인 받을 때 저자의 표정을 상상해 본다.
이 순간 내가 진정으로 살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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