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감> 어제 퇴근길에. 홍시도 보인다. 아직 어린나무다.
<남천 열매>
새들은 저 열매 먹어 창자를 지나 더럽고 냄새 나는 것을 거름으로 새생명 퍼뜨리겠지.
저렇게 붉은 열매임은 생명 이어줄 새들을 유혹하기 위함일 터.
<자전거길 연못가 >
석양길에 찍어 두었던...... 흩어진 억새 씨앗들은 양지바른 어느 곳에 잠들며어 내년 봄을
기약할 것이다.
생명을 이어가는 순환의 큰 고리를 본다.
4년전 입택 선물로 감나무 다섯 주 받은 것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처음엔 저 자리가 아니지 싶은데... 윗쪽에 심었던 것을 옮겨 심은 것같다.
작년엔 풋감 서너 개 품고 있던 것 언제 놓아버렸는지 감잎만 무성했다. 무정란 처럼...
사월 중순, 역광을 받아 솜털 보송보송 반짝이는 감나무 연한순은
태어나서 겨우 눈을 뜨는 강아지 모습 같았다.
노르스름한 꽃잎 흔들리는 것같은 그것은 어느 봄꽃 보다 빛나는 아름다움이었다.
배시시 볼우물 물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그리 아름다울까.
풋감일 때는 떫은 맛으로 새들이나 사람들로 부터 지켜 저렇게 탐스러운 열매 만들어
내놓는다. 딱딱하고 떫던 감을 말랑말랑하고 단맛 고이게 하여 새들이나 사람들이
먹기 좋도록.
무성한 푸른잎으로 열매를 꼭꼭 숨기던 그는 더이상 붉은 빛을 띨 수 없을 즈음에야
비로소 잎들 다 떨어뜨려 붉은 제몸을 드러내놓으며 가져가라 일러준다.
한해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결실들을 지키고 키워낸 감나무는 다시
자연에게,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고 빈가지 될 것이다.
불과 사나흘만에 무성하던 잎들을 일제히 다 떨어뜨린 깊은 뜻을 이제야 알겠다.
봄날 부터 햇순을 , 감꽃을, 풋감을 달고 무성한 잎으로 가려 단맛 쟁인 붉은감을
만들기 까지 감나무의 노고를 읽는다.
'나눔'의 시기를 잘 알고 있는 감나무는 이제 내려놓아 나누는 것만이 제 살길임을
안다. 새생명 순환의 이치에 고개 끄덕일 줄 아는 감나무의 지혜로움을 새삼 올려다본다.
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푸근한 감나무,
지금의 보금자리 집터 보러 왔을 때 동편 가장자리에 키큰 감나무가 있어
아주 흡족했었다.
그전에 경주 집터 보러 갔을 때도 그집의 늙은 감나무 때문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었고.....
감나무는 고향을 뗄래야 뗄 수 없게 한다.
유월 감꽃이 필 무렵이나 풋감을 먹을만한 팔월 즈음의 비온날은 유달리 새벽잠을
설쳐야 한다. 비가 오면 감꽃이나 감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집 보다 감나무가 훨씬 많은 큰집에 남먼저 가야하는 것은 큰집에는 우리 또래 아이가
없어 먼저 가서 주우면 임자기 때문.
낡은 대나무 도시락을 들고 감꽃이나 감을 주우러 가곤 하는데 도시락에 넘치면
강아지풀이아 쐐기 꺾어 감꽃 목걸이 만들어 목에 주렁주렁 걸어 하나씩 빼먹으며 오던
고향 앞산 산길도 떠오른다.
그곳에 풋감 주우러 갔을 때였나...
떨어진 감을 보고 반갑게 가는데 꽃뱀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란!
지금도 뱀을 보면 꼭 풋감이 생각난다. 풋감은 소금물 넣은 작은 오지 항아리에 수일간 담가 두면 잘 발효되어 단맛이 배어든다.
단맛 확인하려고 낸 형제 수 만큼의 이빨자국이 나 있는 연노랑색 풋감의 속살이 떠오른다.
양치는 도회인의 사치생활로만 여겼던 시절이었으니 위생을 따진다면야......
말복 이후의 풋감은 삭혀서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유년의 운동회는 동네 잔치다. 누런 벼가 넘실대는 오릿길 걸어 오시는 할머니의 보퉁이
속엔 삭힌 붉은감을 빼놓을 수 없다.
운동장 서편의 늙은 느티나무 아래서 삭힌 그 감을 먹었었다.
얼마전 동문체육대회 갔을 때 그 느티나무 아래서 삭힌감이 든 할머니의 남루한 보통이를
생각했다. 끓인 물 식혀 소주 넣은 물에 담가 수일간 발효시킨 감.
윗부분에 끓인 물 부었을 때의 상처로 갈색 반점이 수없이 돋아 있던......
그때의 감칠맛을 생각하여 삭힌감 사먹으려 큰시장 까지 가보나 이제 찾을 수 없는
추억속의 먹거리가 되었다.
긴 대나무 장대 윗부분을 갈라 막대기 가로질러 높은 곳의 감을 따거나 주머니 달아 홍시를 따곤 했던 늦가을이면 누구네 아무개가 감 따다가 허리 접쳤다는 동네 소식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일요일 하루쯤은 삼촌, 고모랑 감따기에 매달려야 했고 그렇게 딴 감은 할머니께서
큰독에 차곡차곡 쟁여 넣으신 것을 한겨울 반쯤 얼은 홍시를 저녁 아궁이 앞이나
쇠죽솥 앞에서 녹여 먹던 모습은 참 따듯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까치 몇 마리 날아다니는 붉은 감나무, 까치밥만 남은 나목의 늙은 감나무는
詩興이 절로 돌게 한다. 아무리 겨울 군것질거리가 부족했어도 까치밥으로 몇 개는
꼭 남겨 두었던 그 정서는 사람과 동물을 생명의 존귀함에서는
하나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늙은 감나무를 좋아해서 그집으로 이사해서 아호도 '老枾山人'로 했다는 화가요 수필가인
김용준, 그의 마음을 헤아릴 것 같은 초겨울 밤이다.
빈 집터 황량하게 서 있는 고향집 삽작에 감나무 만은 그대로 서있는 모습이 아련하다.
스산한 초겨울, 바람에 떨어진 감나무 잎들은 몸부벼대며 내년봄
새생명의 순환을 기약하고 있을까. 잘게 부숴진 감잎은 좋은 거름이 될 것이므로...
고향 삽작의 감나무가 그립다.
늦여름, 그 감나무 아래 가마니 깔고 앉아 산비탈 밭덤불에서 따온 청둥호박을 놋주걱으로
긁으면 포슬포슬 푸른 이슬 맺히던 호박 몸위로 감이파리 떨어지기도 했던......
집터만 남은 그곳에 감들이 지천으로 떨어져 뭉개졌어도 주워갈 사람 하나 없는,
얼마나 외롭게 서있을까. 삭풍만 감잎들 흔들며 지나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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