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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 다녀왔습니다.
이름: 서정애


등록일: 2024-07-09 11:22
조회수: 24


꽃들이 순서를 잊지않고 피는 일, 새들이 제 목소리로 울어주는 일,
많이 아프지도 고프지도 않고 그런 것들을 공으로 누릴 수 있는 일까지,
생각하면 세상에 기적 아닌 게 없 다.

죽은 자가 일어나고 흥해 바다가 갈라지는 게 기적이 아니라
별 탈 없이 지나가는 매일 매 순간이 기적이라고,
다행이란 불행의 최소치가 아니라 행 운의 최대치라는 사실..
당연한 일들에 경배하고 무사한 날들에 안도하며 더러는 수굿하게 비켜 앉아서
앉은 자리를 돌아봐도 괜찮을 나이, 이젠 그래도 될, 그래야 할 나이다.
중력 앞에 겸허해진 익은 열매처럼 은밀하게 낙법을 익혀 갈 나이다.
최민자 <사이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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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일간 긴 여정을 마치고 무사 귀국했습니다.
엄마와 며칠간 함께 보내는 중입니다.
요양보호사님 불편해 하실까봐 앞산이 바라보이는 카페를 찾았습니다.
비 그친 후 운무를 휘감은 산 허리를 무추룸히 바라봅니다.
혀끝에 달보드레하게 감기는 아인슈페너 생크림 맛을 음미하면서..
이 또한 기적입니다.

한 달 여동안 손대지 못한 친정 화단, 무성한 잡초를 말끔히 걷어냈습니다.
땀범벅이 되어서..
엄마께 참 내놓으라고 떼 썼더니 캔 맥주 사오셨어요. ㅋㅋ
.땀 흘리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기적 맞죠?

12시 좀 지나 어머님 돌봐 드리기 위해 시댁에 왔습니다.
제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으면 될 거리이나 요양사 마치는 시각에 맞추느라 택시를 탔어요.
문득 콩국 좋아하시는 어머님 생각에 성당시장 입구에서 내렸습니다.
국산콩으로 만든 진국이라 수 년전부터 다니는  단골집입니다. 생전의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셨는데..
그러네요. 생전의 당신이 좋아하셨던 음식 보면 문득문득 그리워집니다. 코끝이 맵구요.
"죽음이 별 게 아니더만.  있던 사람이 없어지는 게  죽음이어..."
어느 이의 일갈을 생각합니다.

얼음 넣은  우뭇가사리 콩국  한  그릇 드렸습니다.
얼마 전에 두 번째  넘어지신 당신은 97세라는 연세임에도 조금씩 회복 중입니다.
볼 일 보시고 옷을 올려달라는 모습이, 아픈 끝에 어린양이 는 아이 같아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손수 하셔야 근육이 살아난다고..

좀전에  노모차로 마루 두 바퀴 억지로 돌고 목욕 시켜드렸습니다. 순전히 저의 강요입니다. ㅎㅎ
오랫동안 목욕을 못하신  탓에 머리 비듬도 많고 국수 밀리듯 때가 나오네요.
끝나고 나니  온몸이 땀 뷤벅이지만 개운해 하시니 보람이죠.
다시 마루 한 바퀴 돌고 기력진과 두유 드시고 쉬고 계십니다.
힘들었지만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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