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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행 사흘째/진도 운림산방 그리고 진도 쏠비치
이름: 서정애


등록일: 2024-02-19 21:47
조회수: 66 / 추천수: 2




운림산방 지하 기획 전시실/눈길을 끌었던 <연꽃>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을 지붕으로 하여 사방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졌단다.

첨찰산 산허리에 걸린 안개를 배경으로 만개한 배롱나무 꽃 반영이 산방의 대표 풍경인 듯
나목이라 별 감흥은 없었지만 단아한 풍경에 매료되었다.









5대에 걸친 화풍







숙소 '쏠비치 친도'



객실 창밖 풍경... 프라이빗한 비치







숙소 인근의 '신비한 바닷길' 팻말을 따라 내려가니 선상 카페가 있다.
뜻밖의 득템에 환호~ 여행의 짜릿한 맛!













선상 카페 장작 난로... 고구마는 익어가고..



어촌계장이라는 쥔장은 직접 잡은 해삼과 문어 등을 판다.
줄배의 자연 수족관에서 주문한 해삼을 건지고 있다



갓잡은 거라 그런지 엄청 딱딱한 해삼



우리 둘 뿐인 고즈넉한 선상 카페 분위기에 녹아들다





쏠비치 진도 야경... 반하다!



진도 쏠비치는 프로방스 풍이란다.







인피니티 풀 야간 풍경







그는 수영에 꽤 능숙하다.





이튿날 아침 풍경



언덕배기 산책길







조석간만으로 바닷길이 열리는 시각에 맞춰 다시 찾은 해변







전날 밤부터 서서히 빠지기 시작한 바닷물은 오전 9시경 완전히 바닥이 드러나 길이 되었다.









팽목항(진도항으로 바뀜)



숙연함으로 묵념을...



타워에서 조망한 진도대교/대교 아래가 성웅 이순이이 대승을 거둔 노량해전, 울돌목이다.



진도 타워



운림산방은 허련이 말년에 서울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의 당호다.
허련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로 불린다.
그는 당나라 남송화와 수묵 산수화의 효시인 왕유의 이름을 따 허유로 알려져 있다.

소치 허련 선생은 1809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
28세부터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기거하던 초의 선사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30대 초반 그의 소개로 서울로 가서 추사 김정희에게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아
남화의 대가로 성장했다.
왕실의 그림을 그리고 여러 관직을 맡기도 했으나, 김정희가 죽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했다.

운림산방은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82년 3대 허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다./인용

말로만 듣던 '운림 산방'을 꼼꼼이 둘러보며 5대에 걸쳐 화풍은 다르지만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술혼에 탄복했다.
배롱나무꽃이 만개할 때오면 풍류를 곱절은 더 느낄듯하다.

고대하던 진도 쏠비치에 체크인..
창밖 풍경에 감탄했다.
저녁 산책에서 만난 선상카페에서 소주 한 잔, 야간 인피니티 풍경 그리고 아름다운 조명...
이튿날 아침의 바다가 열린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진도 타워를 끝으로 귀가를 서둘렀다.
예상보다 늦은 시각에 대구에 도착했다.

보통 2박3일 여정의 남도 기행이지만 이번엔 3박4일로 잡았다.
그는 전처럼 이틀간을 원했지만 먼거리라 내가 우겼다.
잘 결정했다 싶다.
간만에 옆지기와 함께 한 여정에 행복했다.
더도 덜도 말고 이번 처럼 여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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